성녀의 언니지만 국외로 도망갑니다!
~동생의 뒷바라지를 할 바에야 속이 검은 재상님과 도망치겠어!~
22화 그때 종이의 역사가 움직였…을지도?
쌍둥이 여동생만을 우선시하는 가족으로부터 떠나 대학으로 진학,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취를 시작한 여대생・소가와 레이나(十河怜菜)는,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로 소환당했다.
소환시킨 건 쌍둥이 여동생인 마나(舞菜)로 소환당한 곳은 여성향 게임 "스오우 전기(蘇芳戦記)"속 세계.
나라 사이를 잇는 "전이문"을 수호하는 "성녀"로서 마나는 소환당했지만 수호 마력은 그렇다 쳐도 성녀로서 국내 귀족이나 각국의 상층부와 사교를 나눌 수 있을만한 스킬도 지식도 없고, 또한 그걸 얻기 위한 노력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있을 때처럼 자신의 대리(스페어)로서 레이나를 같은 세계로 소환시킨 것이다.
여동생의 뒷바라지는 이제 사양이야──.
모든 것에 있어 여동생 우선이었던 생활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또다시 여동생의 뒷바라지라니,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재상 각하, 저와 함께 도망쳐요."
내심 격노하고 있던 레이나는 일본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여동생의 마수에서 도망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당신과는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이나 양. 공작 각하께서, 당신이야말로 이 종이의 유용성을 자신에게 설명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영지 행정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번엔 제가 영주 대리로서 참석한 것입니다."
로비에 나타난 디르크・바렌트 백작 영식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고는 귀족다운 우아함으로 내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올려 살짝 닿을 정도로 입을 맞추었다.
전혀 복잡한 성장 과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매너의 표본과도 같은 동작에 내심 박수를 쳐버렸을 정도다.
"레이나・소가와 입니다. 성녀의 언니라고 다들 떠받들어 주시지만 사실은 공작 각하께 신세를 지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번 일도 각하의 그릇이 넓으시기 때문에야말로 저 같은 사람의 발언도 수용해주신 거예요. 부디 앞으로도 에드발드 님을 지지해 주십시오."
응. 끝 부분에 깃털이 팔랑거리는 레이스로 만든 부채를 입가에 대고 우아하게 웃는다──를 막상 내가 하려니까 꽤나 부끄럽니다.
표정이 굳어있는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에드발드 님…… 입니까."
원래 "공작 각하"라고 부르지 않으면 결례에 해당하지만 한 마디만 "에드발드 님"이라고 끼워넣음으로써 어디까지나 은연중에, 개인적으로는 친하다는 뜻을 내비친다.
저택에 돌격해오는 영애들은 본인이 허가하지도 않았는데도 "에드발드 님"을 연호할뿐더러, 공식적인 호칭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그저 천박하게 보일 뿐이라고 욘나가 말했었기 때문이다.
"실례했습니다. 바렌트 경에 대해서는 각하께서 자주 말씀하셨기에 친하신 줄로만. 이러한 자리에서 각하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다니, 예의에 어긋나는 거겠죠."
그리고 디르그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치켜세우면서, 본인은 근처의 귀족 영애들과는 다릅니다, 라는 것도 살짝 주장한다.
입고 있는 드레스도, 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장식품이나 자수 등은 절제되어 있는 편이지만 카나리아 색의 가느다란 넥라인과 레이스가 달린 벨 슬리브 부분을 제외하고는 네이비블루 단색.
가슴에는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 브로치가 있긴 하지만 넥라인에 있는 걸쇠 부분에는 블루 사파이어가 달려 있었다.
로우 웨스트 부분에는 넥라인 바로 아래에 박혀있는 자수와 같은 무늬의 체인벨트.
드레스를 가지고 온 헤르만이 말하길 "에드발드의 색을 과시하듯이 배치하면서 우아함을 주장했다." "어지간히 머리가 나쁜 귀족이 아닌 한 에드발드의〝중요한 손님〟이라는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성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상당히 개성적인 옷이 만들어질거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왕도에 가게를 보유하고 있는 프로였다.
그밖에도 야회용이니 평상복이니 하면서 몇 벌이나 가지고 왔는데, 그 대부분이 감청색.
되려 잘도 이만큼의 패턴을 만들어냈구나 싶었다.
귀족 사회의 어려움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공작 각하께서… 저를…… 말입니까."
"애초에 저에게 바렌트령의 종이를 써보라고 권하신건 각하셨으니까요…. 아, 이런 곳에서 선 채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죠. 어서 앉아 주세요."
청구서가 헤르만과 세르반 사이에서 몰래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묻지 않는 편이 좋을 정도의 금액일테지만…… 열심히 "일"하자. 응.
"우선은 이쪽이 정례의 보고서. 거의 예년과 같으니 보고서 자체에 대해 당주님으로부터의 보충 사항이라 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이번 『종이』건에 따라서는 인건비나 개발 투자비용 등의 부분에서 고칠 필요가 생길지도 모르기에 그때에는 이쪽의 서류는 일단 가져갔다가, 후일에 다시 제출하게 될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위 귀족쯤 되면 당사자끼리 직접 물건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이 때에도 디르크의 측근이라고 여겨지는 남성이 공손히 이쪽을 향해 봉투에 들어있는 서류 다발을 내밀었고 세르반이 그걸 받고 있었다.
"그러면 레이나 양, 저와 당신과의 본론을──이쪽으로."
그렇게 말한 디르크는 이번엔 측근 남성에게 여러 가지 꽃 모양의 종이를 테이블 위에 늘여놓았다.
"되도록 요망에 맞는 형태로 만들게 했습니다만…… 어떠십니까."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손으로 쥐어봐도?"
"물론입니다."
처음엔 식물로 만들어진 종이라고 밖에 듣질 않아서 감촉을, 화지 같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지만, 바렌트령이 목화의 산지라는 말을 듣고, 바로 이건 "목면지"라고 생각을 고쳤다.
일본의 화지는 마(麻)나 닥나무가 주축이었다.
옷의 원료로써는 비단, 면, 아마(亜麻), 울로 점점 편리해져 가지만, 양털은 대량으로 있어도 기생충에 의한 상처나 피부병 등의 영향으로 뭔가를 쓰기 위한 종이로써는, 당시 양피지는 거꾸로 희소성이 높았다.
목재 펄프 이야기까지 넘어오면 이세계에선 거의 동화나 다름없다.
프랑스 시골에 현대에도 "목면지"의 제조법이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이 있다고 도서실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파피루스부터 현재의 서양 종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목면지.
귀족의 스테이터스나 다름없는 공식 문서에 있어서 보존성만 따지면 양피지가 좋겠지만 이름 있는 상회나 하위 귀족쯤 된다면 이 종이는 충분히 실무에서도 통용될만한 물건일 것이다.
귀족의 자제가 다니는 학원에서도 쓰일 수 있겠지.
목면지의 기본은 낡은 무명천, 그것도 자투리다. 종이를 뜨는 수고만 아끼지 않는다면 무명옷을 소지 가능할 정도의 중류층 역시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거기까지 가면 일개 영지가 다룰만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으니, 확실하게 재상으로서의 에드발드의 판단을 들어볼 필요가 생긴다.
그러니까 지금은 영지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이야기만으로 괜찮다.
목화를 짜서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이나 오래된 옷의 일부는 종이의 재료로.
영지가 하나가 돼서 재활용 정신을 체현 가능하다. 이게 영지의 강점이 될 것이다.
이번에 에드발드에게 줄 제안 자료의 추가 사안으로, 생산공정 도중에 랜덤 하게 꽃잎을 흩뿌려서 편지지나 메모장, 책갈피 같은 형태로 특산품이 될 수 있을만한 상품 견본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었다.
그 완성품이 눈 앞에 있다.
완성도는──충분히 만족스러웠다.
kakuyomu.jp/works/168164104139160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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